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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KC Meeting 한인 총회 방문기 by 백의흠 목사

2019년 4월 23일 화요일

Museum of the Bible

오늘은 9시에 대형 버스가 와서 Museum of the bible로 tour를 간다. 성경 박물관이 Hobby Robby의 Steve Green회장의 family가 6억불을 기증하고 여러 곳에서 기부하여 2012년에 부지를 마련하고 공사를 하여 2017년 11월에 개관했는데 한번 가보고 싶었다.처음 연말까지는 무료였으나 지금은 입장료가 50불 가까이 되었다.


대형 버스가 와서 성경 박물관으로 갔다. 워싱턴 시내 가운데 있었다. 43만 스퀘어 피트 부지에 지하 2층 지상 6층으로 지어졌는데 정말 잘 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시시하게 생각했으나 보면 볼수록 거대하고 대단하다. 어린이들을 위한 놀이 공간과 성경 전시, 성경 이야기, 예술과 생활에 깃든 성경 등 모든 것이 성경을 이야기 하고 성경으로 끝난다. 약 4만 4천 여점의 사본과 관련 유물 등 방대한 양의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2층의 메인 전시관인 ‘Impact of the bible”과 관련해서 미국인들의 삶속에서 성경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조명한다.


Washington Revelation은 방에 36명이 들어가서 3D의 화면을 통해 워싱턴 도시의 모습이 등장하고 각 도시 위를 날으면서 4D를 이용하여 각 건물의 안으로 들어가 성경 구절이 기록된 곳을 보여 준다. 워싱턴의 전체의 모습을 공중을 통해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런데 나는 몸이 약해져서 그런지 어지럽고 힘들었다. 3층은 ‘Stories of the bible”을 테마로 신약 성경 영화 상영관이 있다. 그리고 나사렛 마을 모형관을 만들어 예수님 당시의 마을과 집의 모습을 보여 준다. 구약 체험관은 30분동안 걸어 다니면서 3D와 4D를 이용한 구약 시대의 역사를 체험하는 방이다.


4층은 “History df the bible”로 성경 기록의 역사를 다룬다. 쐐기 문자를 시작하는 히브리어의 기록들을 살펴보고 사해사본의 기록, 헬라어로 기록된 성경의 모형이나 원본 등을 본다. 그리고 유럽의 성경 기록과 번역의 역사로 구텐베르크 성경, 마틴 루터의 성경, 틴데일 성경, 킹 제임스 성경의 번역 과정과 중요성을 시사하는 디지털 필름과 원본 등을 볼 수 있다.

특히 나의 마음에 울림을 준 것은 사해 광야에서 베두인에 의해 발견된 가장 오래된 성경인 쿰란의 사해 사본이 항아리에 담겨져 있는 것이었다. 원본은 아니고 모형이겠지만 신학을 공부하면서 배운 것들의 감격을 되살려 준다.


성경 박물관 재단에서 엄청난 일들을 해냈다. 대단하고 자랑스럽다.


모든 것이 감탄스럽고 좋았지만 6층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중국 음식인데 맛도 없고 값도 많이 비쌌다. 나는 거의 먹을 수가 없어서 처음으로 돈 주고 산 음식을 1/3도 못 먹고 버렸다.


오후 3시까지 구경을 하는데도 다 할 수 없어서 지치고 힘든 몸을 이끌고 그만 보려고 나오는데 그 곳에서 서울 신용산 교회에서 같이 사역하던 김홍선 목사님 내외를 만났다. 15년 전에 미국에 와서 우리 교회와 집도 그리고 가게도 찾아 오곤 했는데 북 뉴욕주에서 목회를 하면서 이제는 일년에 한번도 보기 힘들었는데 여기서 만났다.노회가 있어서 노회 목사님들과 같이 왔다고 한다. 필라델피아에서 목회하는 김곤 목사님 내외도 만났다.


우리 일행은 성경 박물관을 나와 Smithsonian National Air Space Museum으로 갔다.

여기의 입장은 무료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을 붐빈다. 이곳에서 비행기와 우주선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 아이들을 어렸을 때 여기에 데려 왔어야만 했다는 생각을 가졌다. 수많은 좋은 곳으로 여행을 다녔지만 박물관은 거의 안 왔다. 워싱턴에 왔어도 박물관을 안 들르고 백악관과 국회 의사당을 보고 사진을 찍고 돌아 갔다. 그런데 정말 항공 우주 박물관을 데리고 왔어야 이 곳에서 아이들이 꿈을 갖고 과학에 대한 호기심과 흥미를 갖는다.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이것을 해 주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가 밀려 오는데 아내도 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다. 아내는 우리 아이들에게 이런 곳을 데려오지 않은 것에 대해 나에게 야단을 친다.

항공 우주 박물관은 어른을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아이들을 위한 곳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부모들이 아이들을 많이 데리고 왔다. 어른 보다 아이들이 많은 곳이 이 곳이다.


특별히 유대인들이 아주 많았다. 유월절을 보내고 휴일이라 그런지 아니면 원래 그래서 그런 지 수천명의 관람객 중에 유대인들이 수백명은 된다. 유대인들이 이런 교육을 시키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것 같다. 유대인, 백인, 동양인들은 있는데 흑인이나 히스패닉 사람들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감성적이고 즉흥적인 흥미를 좋아하지, 학구적인 것에는 관심을 안 갖는 것 같다.


항공 우주 박물관을 나와 백악관에 잠간 내려 사진들을 찍었다. 전에는 백악관 담까지 갔었는데 이제는 길 건너에 바리케이트를 치고 담까지 못가게 만들었다. 백악관으로 걸어 가면서 벚꽃 나무를 보니 꽃은 하나도 안 보이고 푸른 잎만 보인다. 필라델피아는 그래도 벚꽃이 남아 있는 나무들이 있는데 여기는 더 더워서 그런 지 벚꽃을 한 송이도 볼 수 없었다. 아내의 실망이 크다. 그래서 내가 내년에 3월말이나 4월 초에 와서 벚꽃을 보자고 했다.


백악관을 둘러 저녁을 먹으로 한국 부페 식당으로 갔다. 그 곳의 음식이 풍부하고 좋았다.

그 곳에서 우리 교회 이목사님의 사모님 언니를 만났다. 2주 전에 우리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렸는데 그 때 워싱턴의 식당에서 웨츄레스를 하고 있다고 했는데 그 식당이었다. 우리를 만나 너무 좋아 하면서 우리에게 회를 더 갖다 주면서 우리 테이블은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우리 부부는 일본의 선교사로 가셔서 30년 가까이 사역을 하신 고정석 선교사님 내외와 같이 식사를 하면서 즐거운 대화를 많이 나누었다.


식당을 나와 호텔로 돌아 와서 사모님들은 Potomac 강가를 거닌다면서 다들 나가고 나는 방에 들어 와서 일기를 쓰고 있다.





2019년 4월 24일 수요일


지난 밤은 잠을 비교적 잘 잤다. 11시 전에 잠들어서 중간에 한번 깨고 6시까지 잤으니 잘 잔 것이다. 몸이 가볍고 깨끗함을 느낀다.


아침 식사를 하고 오늘도 대절된 대형 관광 버스를 타고 Washington 시내로 관광을 갔다. 먼저 간 곳은 Lincoln Memorial이다. 여기는 세번 정도 와 봤기 때문에 그리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서부에서 온 목사님들 중에는 못 본 사람들도 있기 때문에 같이 사진을 찍고 근처의 Korean War Memorial로 갔다. 여러번 가 봤지만 또 둘러 보고 싶은 곳이다.


낯선 땅, 알지 못하던 나라와 국민들의 자유를 위해 젊은 피를 바친 고귀한 생명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미국 군인만 54,246명(UN군은 626,833)이 죽고 8,177명(UN군은 470,267)이 실종 되었으니 그 희생은 너무나 값지고도 안타까운 것이다.(부상자는 미군 103,284, UN군 1,064,453)


그 곳에 한국 군인 같은 두 사람이 정복을 입고 있어서 내가 다가가서 먼저 말을 걸었다. 한국 군인이었다. 한 사람은 해병대 중령이고 한 사람은 해군 장교였다. 한국 대사관에 근무하는 무관인데 오늘 Arizona에서 한국 전에 참전한 용사들이 이 곳에 헌화하러 온 다고 해서 그 예식을 위해 자기들이 나와서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그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는데 해군 장교가 한국전 기념비에 대해 설명하겠다고 한다. 그 설명이 이어지는데 그 사람은 해군 대령이었다.


설명을 다 듣고 그 곳을 떠나려는데 한국전의 참전한 할아버지가 의자에 앉져 있다. 그 할아버지를 보고 말을 거니 Arizona에서 오늘 식을 위해 아내와 같이 왔다. 목사님들이 할아버지에게 고맙다고 말을 하자 할아버지가 자기가 한국전을 위해 지은 시를 낭독하겠다고 하면서 “한국전은 다른 전쟁과 다르다"는 말로 시작하여 5분 이상의 한국전의 처음부터 끝까지의 상황을 읊었다.


할아버지는 19세에 한국 전에 참전하여 21세까지 전쟁이 끝날 때까지 있었다고 한다. 할머니에게 할아버지에 대해 물어 보니 자기에게 화를 내고 한국전에 참전하러 떠났다고 한다. 그래도 무사히 돌아와서 두 분이 70년 가까이 해로하고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목사님들이 그 할아버지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아내가 갑자가 할아버지에게 돈을 주고 싶다고 한다. 할아버지에게 다가가 백불을 건내 주면서 "우리 부모님들도 다 북한에서 피난 왔는데 고맙다"고 하면서 "점심을 사 드시라"고 했다. 할아버지가 깜짝 놀란다. 우리 부부가 그 할아버지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이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니 작년 10월에 우리 가게에 clipper를 보러 온 한국전에 참전한 할아버지가 생각난다. 90불짜리 Clipper의 가격을 물어 보고 금요일에 돈이 나오면 사러 온다고 했는데 안 왔다. 아마 얼마 되지 않는 정부 보조금을 타서 그것을 사기에는 부담이 된 모양이다. 그 때 내가 싸게 주겠다고 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잘못했다. 그 날 공짜로 그냥 주었어야 했다. 내 아내도 "왜 그냥 주지 못했을까?"하면서 후회를 한다. 다음에 그 할아버지가 우리 가게에 오면 꼭 그냥 주어야겠다.


한국전 기념비를 장소를 떠나 Vietnam Veterans Memorial로 갔다. 그 곳에 가니 베트남 전에서 죽은 사람들의 명단이 있고 그 앞에 그들을 기념하는 카드가 놓여 있는 곳이 많았다. 그 카드를 보니 태어난 장소와 생년 월일 그리고 죽은 날짜와 나이들이 적혀 있다. 1948년 생들이 많고 1965,66년에 전사한 대부분 19살에서 21세의 새파란 청년들이다.


젊은이들이 꽃도 피워 보지 못하고 전쟁에 내 몰려 죽임을 당했다. 더구나 배트남전은 헛된 전쟁이었다. 20년동안 전쟁하며 5만 8천여명의 미군이 죽고 100만이 넘는 베트남 국민이 죽었다. 결국에는 공산화 되었는데 값어치 없는 전쟁이다.


모든 전쟁은 공허하고 쓸데 없다.

어떤 전쟁이라도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된다.

모든 전쟁은 인간의 욕심에서 일어 난다.


그 곳을 거쳐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고 Washington Monument 갔다. 소이 말해서 펜슬 탑이다. 그 곳은 공사 중이라 근처에도 갈 수 없었다. 주위만 돌면서 사진을 찍고 National World War 2 Memorial로 갔다. 세계 2차 대전 기념비이다. 미국은 전쟁과 전쟁에 참여한 군인들을 잊지 않고 있다. 현재의 한국의 모습을 보면서 부러울 뿐이다.


그 곳을 떠나 Holocaust Memorial Museum으로 갔다. 입장은 무료였지만 안에 들어 가니 어디로 가서 무엇을 구경할 지 몰라 한참 헤맸다, 한 곳으로 사람들이 입장을 해서 들어 가려고 하니 티켓이 있어야 하는데 그 티켓은 안내 데스크에서 무료로 주는데 미국 군인 출신이나, 소방관, 경찰관 등의 사람이 같은 일행의 표까지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 곳에 들어 갈 수 없어서 그냥 앉져서 쉬고 있는데 마침 시애틀에서 32년 간 목회를 하고 계시는 송목사님이 미국 군인 출신이라 목사님의 덕분에 6명이 티켓을 얻어 안으로 들어 갔다.


홀로 코스트 박물관의 진짜 구경은 이 곳에서만 할 수 있다. 그 당시의 독일과 세계의 유대인에 대한 기사를 신문과 영상으로 다 알리고 특히 나치의 활동에 대한 영상을 끊임없이 방영하고 있다.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의 옛 모습을 재현하고 시체 소각로를 만들어 놓았는데 비참하다. 사람이 아니라 물건이다. 벌거벗긴 채로 죽인 시체를 쌓아 놓았는데 이것은 사람이 아니라 장작과 같다. 특별히 그 곳에서 죄없이 죽은 사람들의 사진을 벽 전체에 붙여 놓았는데 너무 마음 아팠다. 값진 인간의 생명이 파리 목숨 같은 값없는 인간의 목숨으로 전략되는 것을 목격하면서 비애를 느꼈다.


어떻게 인간이 저렇게 잔인할 수 있는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것에 동조해 나간 독일 국민과 교회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한 사람의 잘못된 사고와 결정이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세계를 불행으로 빠뜨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더구나 잘못된 이기주의적인 집단 광기는 무섭다. 자기도 남도, 자기 나라도 남의 나라도 더 나아가 세계를 파멸 시킨다.


그래도 오늘날은 나치의 이러한 만행을 반성하며 현재 독일 역사 교과서에 자세히 서술되어 후대에 교훈으로 가르치고 있다는 데서 위안을 얻기도 하다. 일본도 그러면 좋을텐데, 반성 없는 민족과 나라는 다른 나라와 사람에게 해를 끼칠 뿐이다.

수많은 room들과 전시물로 정말 잘 되어 있는데 그것을 천천히 다 구경하려면 하루도 더 걸릴 것 같다. 너무나도 방대하다. 그런데 우리 일행이 만나기로 약속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우리는 그냥 빨리 지나가듯이 30분만에 끝내고 나왔다. 아쉬웠다.


유대인들의 재력과 단결 그리고 위대성이 부럽다. 끔찍한 비극의 역사를 기억하면서 후손들에게 알려 주고 다시는 세계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이 곳을 나와 US Capitol로 갔다, 미국의 상징인 국회 의사당이다. 워싱턴에 오면 우리는 항상 이 곳에 둘러 사진을 찍는다. 사진 배경이 멋있다. 여기에 7,8번은 온 것 같다.


오늘은 많이 걸어서 그런지 피곤하다. 내가 체력적으로 많이 약해지고 딸리는 것을 느낀다. 오후가 되면서 머리도 많이 아프기 시작한다. 저녁은 고기 부페 집으로 갔는데 저녁을 먹으면서도 내내 머리가 아파서 걱정이 된다. 이런 상태로 어떻게 유럽 여행을 갈 것인가?


저녁을 먹고 8시에 호텔로 돌아 와서 내일 각자 떠나기 때문에 서로 인사를 하고 방으로 돌아와 씻고 또 부지런히 일기를 쓰고 있다. 우리는 내일 아침 7시에 여기를 떠나 가게로 직접 갈 예정이다.





2019년 4월 25일 목요일


지난 밤에 10시 30분 정도에 잠을 자서 비교적 잠을 잘 잤다. 중간에 한, 두번 깨기는 했지만 6시까지 잘 잤다. 샤워를 하고 미리 갈 준비를 했다. 짐을 차에다 갖다 실었다.


자는 사이에 우리 방에다 주차비 84불을 내 카드에서 지불됐다는 영수증을 갖다 놓았다. 숙박자에게 이렇게 비싼 주차비를 받는 곳은 처음 봤다. 맨해튼은 어떤 지 모르지만 미국에서 어떤 호텔이든지 자기 호텔에 숙박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주차비가 당연히 무료인데.


6시 30분에 아침을 먹고 와서 7시 10분에 호텔을 나왔다. 워싱턴 중심부로 들어 가는 길이 조금 막혔지만 오는 길은 무난했다. 한번 공사로 인해 내가 가는 차선이 줄어 들었는데 나는 줄어 드는 것을 모르고 가다가 길이 없어서 옆차와 부딪칠 뻔한 아찔한 순간이 한번 있었다. 그 외에는 무난한 길이었다.


가게에 오니 9시 59분이었다. 막 Grilly가 우리 앞에 도착하고 있었다. 아무 일이 없이 무난한 여행이었고 가게도 아무 일이 없어서 감사하다. 가게를 Grilly가 맡으니 우리는 마음이 편했고 Grilly도 좋은 모양이다. 이제는 가게를 비워도 별로 걱정이 안 된다. 모든 것이 감사할 뿐이다.


내년의 총회는 해외에서 갖는다. 나는 임원들에게 금년처럼 날짜만 잘 맞으면 아내와 함께 참석하겠다고 했다. 회장이 내년 총회는 우리 부부의 가게 일정에 맞쳐 총회 일정을 잡겠다고 했다. 이제는 유럽 종교 개혁지 탐방도, 한국 가는 것도 그리 걱정이 되지 않는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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