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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한 거부

Resisting a Return to Normal

July 16, 2020


오늘은 조세의 날이다. 지금은 일반적으로 세금 보고를 하는 때는 아니다. 우리는 봄에 세금 보고를 하는 것에 훨씬 더 익숙하다. 그러나 지금은 일반적인 것이 그리 많지 않다. 


COVID-19은 여러 면에서 우리 삶을 뒤집고 있다. 삶이 가능하도록 많은 조항들과 임시 조정된 것들을 만들어 낸다. 마스크를 쓰고 장을 보고, 온라인 예배를 드리며, 자택 근무를 하고, 드라이브 쓰루로 졸업식을 하고, 다른 사람들과 접촉을 줄이려고 노력한다. 이것은 분명 우리가 기대했던 2020년은 아니다. 필자는 4개월이라는 긴 시간이 지난 지금,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지쳤고 “정상”으로 돌아가길 갈망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는 것…. 아마도 가장 쉬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가 바라는 것일지 궁금해 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결국, 코로나 이전의 방식이 꼭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모두에게 그런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인종과 민족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격차, 코로나19으로 인해 더 부각되고 악화되고 있는 심각한 격차가 존재하는 나라에 살고 있다. 


예를 들면, 3월에 전국의 학교가 아이들을 원격으로 교육하기로 결정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유색인종이 월등히 많은 저소득층 가정의 학생들은 배움의 길이 심각하게 막혀버렸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필요한 좋은 인터넷과 개인 컴퓨터, 그리고 자료들을 다룰 수 있도록 집안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경우에 따라, 기술 산업은 인터넷 접근성과 컴퓨터를 제공하면서 이러한 불균형 완화를 위해 발전했다. 그러나 이것은 오랫동안 미국 학교를 괴롭힌 교육 자원과 기회의 불균형에 대한 일시적이고 국소적인 해결책이었다. “정상”으로 돌아가는 우리 교육 시스템이 저소득층들에게 실패하고 있다는 것을 무시하는 것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Covid-19는 우리의 의료 시스템에서도 나타나는 비슷한 격차를 부각시키고 있다. 질병 관리 본부(CDC)에 따르면 유색 인종의 20-25%가 코로나19에 감염됐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세 가지는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겠다. 1. 유색 인종들은 바이러스 감염에 노출될 확률이 훨씬 더 많은 필수 산업에 종사하는 경향이 있다. 2. 유색 인종들은 건강 보험이 없는 사람이 많고 이로 인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했다. 이것은 바이러스에 취약해지는 결과로 이어졌다. 3. 인종 차별과 구조적 불평등은 유색 인종의 예방 및 보살핌을 약화시킨다. 정상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코로나19으로 인해 드러난 전반적인 유색 인종의 복지 불평등을 계속 무시하는 것이다.  


올해 5월 경찰 손에 의한 Georgy Floyd의 무고한 죽음으로 미국은 한 국가로서 인종 차별과 불평등에 맞서야했다. 우리가 국가의 구조적 인종 차별과 제도에서 깨어났다고 말할 수도 있다. 이로 인해 수백, 수천명의 사람들이 전국적으로 도시마다 모여 인종 차별과 경찰의 폭력에 저항하기 위해 모였다. 기관들은 인종 차별적인 태도와 행동에 반대하는 성명을 냈다. 


기독교 단체의 백인들은 James Cone과 Ta-Nehisi Coates를 읽기 위해 함께 모였다. 백인 특권, 비판적 인종 이론, 구조적 인종 차별과 같은 문구가 일상 대화에서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런 고무적인 행동에는 에너지와 열정이 있다. 그러나 비록 내가 이런 글을 쓰고 있기는 하지만, 변화가 빠르고 쉽게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 “정상”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엔 강한 끌림이 있다. 그리고 미국에서 인종 차별은 “정상”의 일부분이다. 


아마도 이것은 우리가 리스바로 부터 교훈을 얻을 수 있는 부분일 것이다. 구약에 등장하는 리스바는 사울의 첩으로 그닥 잘 알려진 인물은 아니다. 사무엘 하 21장에서 사울이 살해되고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된 후에 우리는 리스바를 만난다. 다윗은 사울이 공격한 것에 대한 보복으로 사울의 남은 자녀 7명을 기브온 사람들에게 넘겨준다. 무고한 피를 위한 무고한 피이다. 이 희생자들 중 두 명이 리스바의 아들이었다. 


리스바는 아들들의 죽음을 막을 힘이 없다. 그러나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것이었다. 무고한 생명들의 끔찍한 죽음과 폭력의 불의함에 시선을 돌리게 했다. 6개월 동안, 더위와 빗 속에서 그는 시신 앞에 서 있었다. 애도하며 그들의 위엄을 높이고 새와 들짐승으로부터 시신을 지켰다. 6개월 동안 그는 회개와 사회적 변화를 위해 온 나라를 초대하며 베옷을 입고 앉아 있었다. 6개월 동안 리스바는 마침내 다윗이 자신의 존재를 알아채고, 사울과 요나단, 사울의 일곱 아들의 뼈를 모아 존엄하게 묻어줄 때까지 고통을 당했다. 


우리 중 많은 이들이 올해 사건들로 인해 이 나라에서 일어나는 인종 차별의 현실에 눈을 떴다. 이 모든 것에서 나의(그리고 아마도 여러분의) 기도는 이 새로운 자각과 에너지가 실제 사회에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다. 리스바와 같이 우리는 흑인들과 동양인 친구들의 위엄을 대변하며 끈질기고 용감하고 희생적이 될 것이다. 리스바와 같이 정의가 이길 때 까지 우리는 계속해서 불의를 지적할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에서 우리는 “정상”으로 돌아가는 것을 거부할 것이다. 



Amanda Benckhuy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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